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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自動車, 미국 영어: automobile, 영국 영어: motor car)는 자체 엔진에 서 동력을 생산해 바퀴에 전달하여 도로 상에서 승객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교통 수단이다. 자동차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automobile'은 그리스어 'autos'(스스로)와 라틴어 'movere'(움직이다)에서 왔다. 즉, '스스로 움직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1911년순종의 전용차와 조선총독부의 관용(官用)으로 처음 들어왔다. [1]


[편집] 역사

자가 동력으로 움직이는 탈 것은 1769년 초에 처음 선보였지만, 자동차의 진정한 역사는 칼 벤츠가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한 188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의 역사는 디자인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시대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각 시대를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학계에서는 보통 아래 표와 같이 자동차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고 있다.


자동차 역사
1890 1900 1910 1920 1930 1940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베테랑기(Veteran era) 브래스기(Brass era) 빈티지기(Vintage era) 전쟁 이전
(Pre-War)
전쟁 이후
(Post-War)
현대(Modern)
고전 자동차(Antique)
클래식 자동차(Classic car)

[편집] 발명의 시대(-1880년대)

1895년식 벤츠 벨로(Benz Velo)

1895년벤츠 벨로(Benz Velo)

최초의 자동차는 17세기 후반에 등장했다. 1678년 플랑드르의 성직자였던 페르디낭드 베르비스트가 60센티미터의 작은 증기 자동차를 선보였다. 이 자동차는 중국 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였다. 1769년초에는 프랑스공병장교였던 니콜라 조지프 퀴노가 2기통 3륜 증기 기관을 탑재한 증기 자동차를 성공적으로 시연해 보였다. 퀴노의 자동차는 1시간이나 달렸지만 브레이크가 없어 파리 시 교외에서 언덕길에서 정지하지 못해 벽에 부딪히는 최초의 자동차 사고를 일으켰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동차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리처드 트레비식1801년 증기 마차를 만들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 후 약 10년 동안 영국에서는 핸드 브레이크, 변속기, 조향 장치 등이 개발되었다. 대량 운송수단으로서의 상업적 성공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시의 자동차는 크기도 큰 데다가 속도 또한 너무 빨라 사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이에 1865년 빅토리아 여왕은 최초로 공공 도로에서의 자동차 통행법을 공표하게 된다. 이 적기조례(Red Flag Act)라 불리는 이 법률에는 적색기를 흔들고 경적을 울려야만 보행자를 앞질러 갈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1896년까지 계속된 이 법률로 자동차 개발은 위축을 받게 되고, 대신 증기기관차에 개발이 더 가속화되었다.

미국에서는 1789년 올리버 에반스(Oliver Evans)가 미국 최초의 자동차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 이 특허를 이용해 에반스는 1804년 증기기관을 탑재한 자가 추진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 이 자동차는 육상뿐만이 아니라 수상에서도 이동할 수 있는 미국의 첫 번째 수륙양용 자동차였다.

1860년 벨기에 출신의 에티엔 르와르(Etienne Lenoir)가 석탄가스로 움직이는 2행정 내연기관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의 실험은 2마력으로 3시간동안 7마일을 움직이는 성과를 얻었으나 자동차 연구를 지속하지는 않았다.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한 칼 벤츠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한 칼 벤츠

1880년대 후반 몇몇 독일의 발명가들은 휘발유 내연기관으로 자동차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휘발유 내연기관 자동차는 칼 벤츠(Karl Benz)가 선보였다. 그는 1885년 만하임에서 시연을 보이고, 1886년 1월 29일 관련 특허를 취득한 후 1888년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를 시작했다. 이 3륜 양산 자동차는 무게가 250킬로그램이고 200알피엠(rpm)에서 0.85마력의 힘을 내는 1기통 4엔진을 얹고 최고 시속 16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었다. 곧이어 1889년 고트리브 다임러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역시 휘발유 내연기관을 장착한 1기통 4륜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들은 1886년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를 발명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편집] 베테랑기(1880년대-1905년)

1888년 독일에서 칼 벤츠에 의해 휘발유 자동차가 양산되기 시작했지만, 영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자동차를 위험물로 취급해 여러 가지 규제가 가해졌다. 결국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제조 회사는 칼 벤츠에게 특허 사용권을 사와 1889년 설립된 파나르 르바소(프랑스어: Panhard et Levassor)로 프랑스의 차지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1893년 찰스 듀리에(Charles Duryea)가 그의 동생 프랭크 듀리에(Frank Duryea)와 미국 최초의 자동차 제조 회사인 듀리에 모터 웨건 회사(Duryea Motor Wagon Company)을 설립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 자동차 생산을 주도했던 회사는 올즈모빌(Oldsmobile)이었다. 올즈모빌1902년부터 큰 규모의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었다. 곧이어 캐딜락, 윈톤(Winton Motor Carriage Company), 그리고 포드 자동차 회사도 수천대의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국 서부 시대 동안에는 수많은 기술자들이 자동차 기술을 활발하게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증기 자동차, 전기 자동차, 그리고 휘발유 자동차를 제작하였다. 심지어는 엔진을 두개 또는 세 개나 장착한 자동차를 고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대에 들어서 휘발유 내연 기관을 장착한 자동차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엔진 배기량도 증가하여, 1200cc까지 증가했다. 현대의 자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스/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 다중밸브 엔진, 오버헤드 캠샤프트(OHC), 4륜구동 굴림방식 등등이 모두 이 시기에 시도되었다가 폐기되었다.

이러한 기술혁신과 시도는 너무 급격히 이루어져 자동차 외형, 재질, 제어장치 등등의 자동차 구조에 관한 명확한 표준이 정립될 수 없었다. 예컨대, 수많은 베테랑 자동차들이 스티어링 휠 대신에 키(tiller)를 사용하여 방향을 바꿨으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구동축은 현대까지 사용하는 체인 구동 방식이 사용되었고, 승객실 위로 지붕이 있는 형태의 자동차 외형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1895년 11월 5일 조지 셀던(George B. Selden)이 2행정 자동차 엔진에 관한 미국 특허(U.S. Patent 549160)를 취득했다. 이 특허는 결론적으로 미국의 자동차 기술 발전을 방해하는 특허가 되고 말았다. 셀던은 이 특허를 큰 미국 자동차 회사에 라이센스를 주고 로얄티를 챙기게 된다.

베 테랑기 동안에 일반인들은 자동차는 유용한 기계장치가 아니라 그저 신기한 기계장치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장도 자주 일어나고 연료는 구하기 어려웠으며,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구입한 자동차는 한 해만 지나도 구형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자동차의 유용성을 입증한 큰 사건들도 있었다. 1888년 칼 벤츠의 아내였던 베르타 벤츠(Berta Benz)는 어린 두 아들의 간청으로 만하임에서 친정이 있는 포르츠하임까지의 106킬로미터를 아이들을 태우고 달리게 된다. 이 사건으로 베르타 벤츠는 후에 자동차의 어머니라 불리게 된다. 미국에서는 1903년 호레이쇼 넬슨 잭슨(Horatio Nelson Jackson)이 그의 애견 버드(Bud)와 함께 자동차로 북미대륙 횡단에 성공한다.

1894년에는 7월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가 프랑스 일간지인 르 프티 주르날(프랑스어: Le Petit Journal) 주최로 파리-루앙(126km)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1906년에는 최초의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Grand Prix motor racing)가 역시 프랑스에서 개최되었다.

[편집] 브래스기(1905년-1918년)

주로 미국에서 사용되는 자동차 역사의 한 시대인 브래스기(brass era)는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7세의 시기라 하여 에드워드기(Edwardian era, 1905년-1918년)라 한다. 브래스기의 시작이 되는 1905년은 호사가들의 취미가 아닌 일반인들의 필요에 의해 자동차가 판매되기 시작한 해이다.

브래스기의 10년은 자동차 구조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는 시기였다. 이전까지 시도된 수많은 실험적 디자인과 대체 동력 시스템은 더 이상 시도되지 않았다. 당시에 정립된 표준화된 자동차 구조는 파나르 르바소시스템 파나르(프랑스어: Systeme Panhard)였다. 파나르 르바소시스템 파나르를 광범위하게 라이센스해 주었고, 비로소 표준화된 자동차가 제작되었다. 이 구조는 엔진을 자동차 앞부분에 위치시키고, 후륜구동 굴림 방식, 내연기관, 그리고 활동 기어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4륜 대형 마차 형태의 탈 것은 빠르게 사라져 갔고, 소형 무개 마차 역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 시기 동안, 수백 개의 작은 자동차 제작 회사가 등장해 경쟁하면서 자동차 기술 개발 역시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요한 기술로는 1930년 로버트 보쉬(Robert Bosch)가 고안한 전기 점화, 1910년1911년 사이에 찰스 커터링(harles Kettering)이 개발한 전기 자동 시동기가 있다. 그 외에도 독립현가식 장치, 4륜 브레이크 등도 이 시기에 개발되었다. 판상 스프링현가장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프레임 재질은 나무에서 L형강으로 바뀌었다. 또 변속기와 연료 흡입 조절판을 적용해 다양한 속도로 주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리 결정된 고정 속도로 주행하는 자동차들이 이후에도 계속 제작되어 주요 기술이 되지는 못했다.

브래스기에 생산된 자동차들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편집] 빈티지기(1919년-1930년)

빈티지기(vintage era)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9년부터 주식시장이 붕괴되었었던 1929년 말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동안 제작된 자동차들은 엔진이 자동차 앞부분에 있고, 지붕을 가지고 있었으며 표준화된 제어 시스템으로 제작되었다. 내연기관 엔진의 개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고급 차종에서는 다중 밸브와 오버헤드 캠 엔진이 채택되었다. 심지어 최고급 차종에는 V8, V12, V16 엔진들이 장착되기도 했다.

1926년식 오스틴 7 박스 살롱

1926년오스틴 7 박스 살롱

빈티지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자동차는 다음과 같다.

[편집] 전쟁 이전기(1930년-1948년)

전쟁 이전기는 대공황이 일어났던 이듬 해 1930년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복구시기인 1948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자동차를 클래식 자동차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1930년대까지 자동차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기술이 발명되었다. 물론 최근까지도 계속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륜구동 굴림 방식은 이전에 고안되었지만 앙드레 시트로엥(프랑스어: André-Gustave Citroën)이 1934년 새롭게 고안해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Citroën Traction Avant)에 적용하기도 했다.

전쟁 이전기에는 대공황으로 인해 자동차 제조 회사의 수가 점차 감소추세에 있었고, 인수합병이 이루어지면서 자동차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자동차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편집] 전쟁 이후기(1949년-1974년)

194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이 출현했다. 미국에서는 제너럴 모터스, 올즈모빌 그리고 캐딜락이 고압축 V8 엔진을 장착한 모델들을 선보였다. 영국에서는 1951년 맥퍼슨 스트럿을 장착한 포드 칸설(Ford Consul), 1948년 모리스 마이너(Morris Minor) 그리고 1949년 로버 P4(Rover P4)가 발표되었다. 이탈리아엔초 페라리250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란치아 역시 V6 엔진을 장착한 란치아 오렐리아(Lancia Aurelia)를 발표했다.

1950년대에는 전세계로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엔진의 힘과 주행 속도가 크게 증가하고, 자동차 외형도 점점 우아하게 바뀌어 갔다. 이 시기에는 소형자동차가 크게 유행했다.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가 개발한 미니피아트 500유럽을 휩쓸었고, 일본에서는 경자동차(일본어: 軽自動車)가 보급되었다. 전설적인 폴크스바겐비틀히들러가 만들어낸 독일국민차임에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아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캐딜락 엘도라도(Cadillac Eldorado)와 같은 최고급 자동차도 오랜 공백 기간을 거쳐 다시 출현했고, 페라리 아메리카와 같은 GT카가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자동차 시장에 변화가 생긴다.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여전히 고급 기술을 채택한 자동차를 생산하였고 일본한국전쟁 특수 이 후 경쟁력 있는 자동차 생산국으로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되면서, 디트로이트는 외국의 경쟁업체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 그리고 포드 자동차 회사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서둘러 소형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시장에서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또 이 시기는 BMC와 같은 거대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수입(캡티브 수입, captive imports)과 배지 엔지니어링 방식이 미국영국에 유행처럼 번진 시기였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유행의 결과로 페라리, 마제라티, 그리고 란치아와 같이 틈새 시장을 공략하던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들은 거대 기업에 흡수되고 만다.

한편, 1960년대미국에서는 포니카머슬카의 등장으로 자동차 성능이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1964년 머슬카포드 머스탱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1960년대 초반에 가장 유명한 자동차 중 하나가 되었다. 1967년에는 시보레카마로(Camaro)를 내놓아 머스탱과 경쟁하기도 했고 계속해서 1968년카마로 Z28를 출시했다. 1969년에는 포드 자동차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라서면서 머스탱 보스 302(Mustang Boss 302)와 머스탱 보스 429(Mustang Boss 429)를 발표했다. 그러나 승승 장구하던 미국 자동차 업계는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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